[文藝時代]는 , 大正13년 10월에 창간되어진 同人 雜誌에 있다.
같은해의 6월에 창간되어져, 프로레타리아의 文學運動의 역사적인 기념비로 되었다.
[文藝戰線]과 더불어 , 昭和文學의 출발점을 알린 도표로서 알려져 있다.
終刊은 昭和2년 5월호, 통산 32책의 발행이 지금에서야 확인되어지고 있다.
최초의 동인은 伊藤貴磨, 石浜金作,川端康成,加宮貴一,片岡鐵兵,橫光利一,中河與一,
今東光,佐佐木茂索, 佐佐木味津三,十一谷義三郞,菅忠雄,취訪三郞,鈴木彦次郞의 14명이다.
今東光은 후에 菊池寬과의 불화등의 일이 있어서 탈퇴했다.
당시의 동인들은 菊池寬이 主宰하는 [文藝春秋]의 編集同人에 있고, 寄稿者에 있었다.
[文藝春秋]에서 자라난 신인작가의 그룹으로 보아도 좋다.
잡지발간이전에 주요한 동인들이 이미 다소의 地步를 文壇에서 인정한 신진작가에
있었던것은
[文藝春秋]라고 하는 동인잡지의 특색의 하나이다.
창간호에 게재되어져 있는 [創刊의 辭]에서 川端岡成은 <새로운 生活과 새로운 文學-
이것이 체득할수 있는것이 된다면 우리들은 무엇도 苦勞하지 않는다.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이 [文藝時代]의 탄생을 新進作家의 旣成作家에 대한
挑戰이라든가,
旣成文壇破壞運動이라고 말하고 있느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에 있어서 제2 제3 이하의 문제에 있다. >고
서술하고,
<우리들은 우선 우리들 자신의 생활과 예술과에 국면타개를 초래하기위해, 이잡지에
모인것
에 있다>라고, 그의 포부를 말하고 있다.
創刊 翌月 발표되어진 千葉龜雄의 유명한 時評 [新感覺派의 誕生]은 <지금까지
나타난것의
어떠한 우리예술가보다도 훨씬 새롭고, 語彙와 詩와 리듬의 感覺이 살아있다는것은
이미
논의할 여지가 없다.>는것을 인정, 당시의 문학청년 高見順은 또 그의 창간이
얼마나 신선한
인상을 받았는가를 <사서 서점을 나오면 바로 펴서 , 걸으면서 읽었다. 여기에서
우리들 젊은세대
의 거듭해서 구하고 있다. 목말라있던 문학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런 기분으로 [文藝時代]의 創刊號를 맞이했다.
이러한 감격을 나와 동년배의 문학애호자는 이때 맛보았던것은 아닌가>라고 회상하고
있다
([昭和文學盛衰史]1)
이렇게 해서 [文藝時代]의 創刊은 新感覺派의 文學運動을 일으키고 , 昭和文學의 모더니즘의
歷史
를 잇는 단서로 되었던것이다.